“Then the LORD said to Moses, ‘Go [Bo / come] to Pharaoh, for I have hardened his heart and the hearts of his officials so that I may perform these signs of mine among them.'” (Exodus 10: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로에게 가거라. 그와 그 신하들이 고집을 부리게 한 것은 나다. 이것은 내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온갖 이적을 보여 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출애굽기 10:1
In last week’s Parasha Va’era, we read of the first seven calamitiesthat God inflicted upon Egypt to persuade Pharaoh to release the Israelites from slavery. This week in Parasha Bo, God sends the most devastating and final three plagues: locust, darkness and death of the firstborn.
지난주 파라샤 바에라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고자 파라오를 설득하기 위해 이집트에 내리신 일곱 가지 재앙에 대해 읽었습니다. 이번 주 파라샤 보에서 하나님은 메뚜기, 흑암, 장자의 죽음이라는 가장 파괴적인 마지막 세 가지 재앙을 보내십니다.
Adonai spoke to Moshe, instructing him to go once more to the formidable Pharaoh. This divine charge bore semblance to an advance order, a call to confront the hardened heart of Pharaoh, not with conventional weapons but with the penetrating force of divine signs.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다시 한 번 파라오에게로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 신성한 돌격은 재래식 무기가 아닌 신성한 표징의 관통력으로 파라오의 굳은 마음에 맞서라는 선제공격 명령과도 같았습니다.
In the intricate of this command, a profound truth unfolded, resonating with the words: "The kingdom of heaven is suffering violence." Here, violence was not wielded as a destructive force but as a revolutionary invasion.
이 명령에서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라는 말씀의 심오한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서 폭력은 파괴적인 힘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적인 침략입니다.
The prophesied mission of Elijah was to turn the hearts of parents to their children and vice versa. It was a call to bridge the disconnect, to invade the generational gaps with the force of reconciliation and understanding. The divine order to go to Pharaoh echoed in the words of Malachi, suggesting that the ultimate battle was in entering each other's hearts.
엘리야의 사명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고 자녀들의 마음을 부모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절을 해소하고 화해와 이해의 힘으로 세대 간의 간극을 뛰어넘으라는 부름이었습니다. 파라오에게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말라기에서처럼 궁극적인 싸움은 서로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냅니다.
The call to go, to advance into the hearts of the stubborn, is a call to break down walls, to initiate a spiritual violence that leads to true repentance. In entering each other's hearts, we pave the way for the Lord's coming, for heaven within and among us. It is a mission of reconciliation, an advance order to bring the generations together, breaking down the barriers that separate and preparing the way for the completeness of heaven on earth.
완고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나아가라는 부르심은 벽을 허물고 진정한 회개로 이끄는 영적 폭력을 시작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서로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천국을 위한 주님의 오심을 위한 길을 닦습니다. 이것은 화해의 사명이며, 세대를 하나로 모으고, 갈라놓는 장벽을 허물고, 이 땅에 천국을 완성하는 길을 준비하는 사전 명령입니다.
Indeed, the power to penetrate and invade each other's hearts resides in the transformative force of the Holy Spirit. It is through the divine connectivity and empathetic communion of the Holy Spirit that hearts resonate in unison, creating a profound connection across generations. In the context of the Old Testament, the concept of violence takes on a unique hue, signifying not physical harm but a radical process akin to peeling off the skin, innovation, and shedding the old self.
실제로 서로의 마음을 관통하고 침범하는 능력은 성령의 변화시키는 힘에 있습니다. 성령님의 연결과 공감하는 친교를 통해 한마음이 되며 세대를 뛰어넘는 깊은 관계를 형성합니다. 구약성경의 맥락에서 폭력의 개념은 독특한 색채를 나타내는데, 신체적으로 해를 끼침이 아니라 가죽을 벗기고 혁신하며 옛 자아를 벗어버리는 것과 유사한 급진적인 과정을 의미합니다.
This spiritual violence, like the painful act of shedding one's skin, symbolizes the profound change and revolution required in entering each other's hearts. The call to go, to engage in the divine advance order, is a summons to endure the discomfort of stepping into the unknown, to embrace the transformative violence of peeling away the layers of the familiar, and to courageously invade the territories of hardened hearts.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스러운 행위처럼 이 영적 폭력은 서로의 마음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깊은 변화와 혁명을 상징합니다. 가라는 부름, 하나님의 전진 명령에 참여하라는 부름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불편함을 견디고, 익숙함의 층위를 벗겨내는 변혁적인 폭력을 받아들이고, 굳은 마음의 영토를 용감하게 침범하라는 소환입니다.
In the unfolding tapestry of the last three plagues – the locusts, the darkness, and the death of the firstborn – a connection to the apocalyptic visions in the Book of Revelation becomes evident. The locust plague, as described in Revelation, portrays a formidable force equipped for spiritual warfare. These locusts, symbolic of the enemy's soldiers, are strategic tools aimed at eliminating those who persevere until the end times.
메뚜기 재앙, 흑암, 장자의 죽음 마지막 세 가지 재앙이 펼쳐짐에서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비전과의 연관성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메뚜기 재앙은 영적 전쟁을 위해 준비된 강력한 세력을 묘사합니다. 적의 군대를 상징하는 메뚜기 떼는 마지막까지 인내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입니다.
The shearer-worms devour what the cutter-worms and grasshoppers have left behind. As the end times draw near, this plague intensifies, targeting the remnant, the next generation. Systematically, through media, culture, and worldly pleasures, it seeks to erode our children.
황충은 팥중이, 느치가 남기고 간 것을 다 먹어치웁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이 재앙은 더욱 심해져 남은 자, 즉 다음 세대를 노립니다. 미디어, 문화, 세속적 쾌락을 통해 조직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갉아먹습니다.
In the spirit of John the Baptist, who embodied the essence of Elijah, our mission in these crucial times is to proclaim the word and advocate for repentance. Fervently praying and repenting, we aspire to transform the hearts of both our parents and our children, fostering a connection with the Torah. The restoration of the Shabbat Shalom table, where the Torah is shared and fellowship blossoms on the Sabbath, becomes paramount in this mission.
엘리야를 계승한 세례 요한의 정신으로,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사명은 말씀을 선포하고 회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회개하면서 아버지와 자녀 모두의 마음을 변화시켜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토라)과 연결되기를 열망합니다. 안식일에 말씀을 나누고 교제가 꽃피는 샤밧 샬롬의 식탁을 회복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In the ancient land of Hebrew kin, a tale unfolds where faith begins.
Pharaoh, a ruler, stern and grand, felt unease as worship graced the sand.
고대 히브리 민족의 땅에서 믿음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엄격하고 위엄 있는 통치자 파라오는 예배가 모래 위에 펼쳐지자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A Hebrew family, close and tight, in unity, bathed in sacred light.
Parents and children, hearts aligned, their worship, a bond, Pharaoh maligned.
친밀하고 긴밀한 히브리 가족들이 하나되어 하나님의 임재의 빛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예배 가운데 부모와 자녀들의 마음이 일치합니다. 파라오는 비방합니다.
For in their gathering, God was near, a truth Pharaoh preferred not to hear.
His grip tightened, chains unseen, to quell the worship, disrupt the serene.
파라오는 그들의 예배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음은 듣고 싶지 않은 진실입니다.
그의 손아귀는 보이지 않은 쇠사슬로 더욱 조입니다. 예배를 잠재우고 평온을 깨뜨리기 위해서입니다.
Pharaoh, in opposition to divine decree, failed to grasp the familial glee.
He tried to halt what God approved, in unity and worship, their spirits moved.
파라오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가족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승인하신 것을 막으려 했지만, 연합과 예배 속에서 그들의 영혼이 움직였습니다.
Approaching the end, where locusts swarm, their mission clear, to silence devotion's warm.
메뚜기 떼가 몰려드는 끝이 가까워지자 대적의 임무는 분명합니다. 헌신의 열정을 잠재웁니다.
Let not the locusts wither the next, stand firm, resilient, in the face of this hex.
Gather 'round the table, in worship find peace, in unity, resistance, let enmity cease.
메뚜기 떼가 다음 세대를 시들게 하지 말고, 이 주술에 맞서 굳건히 서십시오.
식탁에 둘러앉아 예배를 드리며 평화를 찾고, 하나되어 저항하며 적대감을 멈추게 하소서.
This article was written based on Pastor Daewi Kang's Mail Torah(매일토라) and the inspiration gained from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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