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mmand of infiltration and violence to 'Go into Pharaoh' was Moses' mission to touch Pharaoh's heart, turn him around, and free the Israelites from slavery. Likewise, worship is a kind of violence. Entering into the Lord, and the Lord entering into me!
The nature of wanting to stay within me and stubbornly insisting on what was before is similar to the hard heart of Pharaoh. The Holy Spirit entered our heart, turned us around, and reorganized it into a sanctuary where the Lord could dwell.
When we go to a place of worship that touches the heart of the Lord, koinonia, which allows us to touch each other's hearts, opens up.
'파라오에게 들어가라'는 침투와 침노의 명령은 바로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돌이키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시키려는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배도 일종의 침노입니다. 내가 주님 안으로 들어가고, 주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머물기를 원하고 이전의 것을 완고하게 고집하는 본성은 바로의 완악한 마음과 비슷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고, 주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소로 재구성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가 닿는 예배의 자리에 가면 서로의 마음에 가 닿게 되는 코이노니아가 열립니다.
The Ninth Plague: Darkness
In the shroud of impenetrable darkness that befell my kingdom, a darkness that eclipsed not just the sun but the very essence of light, I found myself trapped in a void of despair. As the abyss of night wrapped its suffocating cloak around us, a bitter truth emerged - we were rendered blind not only to the world but to each other.
내 왕국에 닥친 뚫을 수 없는 어둠, 태양뿐 아니라 빛의 본질까지 가린 어둠 속에서 나는 절망의 공허 속에 갇혀 있습니다. 밤의 심연이 숨막히는 장막을 두르고 우리를 감싸는 순간, 세상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해서도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Moses," I uttered in a voice laden with the weight of realization, "See my face no more, for on the day you see my face you will die." Little did I comprehend the depth of my own words at that moment. In the aftermath of the plague of darkness, a disaster of hatred and enmity unfolded. A calamity that not only obscured our vision but tore at the very fabric of relationships, turning them to tatters.
"모세, 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 네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내 말의 진짜 의미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흑암의 재앙으로 증오와 적대감이 펼쳐졌습니다. 시야를 가렸을 뿐만 아니라 관계의 근간을 찢어버리는 재앙입니다.
The absence of light became a metaphor for the eclipse of understanding, for when faces remained hidden, hearts followed suit. In that stygian abyss, the intimacy that once flourished crumbled into dust. Unable to see each other's faces, we were bereft of the means to reach one another's hearts. The very essence of worship, the 'koinonia' that bound us in fellowship, was shattered.
빛의 부재는 이해가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얼굴이 가려져 있을 때 마음도 그 뒤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 캄캄한 심연 속에서 한때 풍성했던 친밀감은 먼지가 되어 사라집니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을 잃었습니다. 예배의 본질, 즉 우리를 교제로 묶어주던 '코이노니아'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In my despair, I found myself lamenting the consequences of my obstinacy. The extinguishing of light meant more than just a physical phenomenon; it meant the demise of understanding, compassion, and connection.
절망 속에서 완고함으로 말미암은 이 모든 것들을 한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빛의 소멸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이해와 긍휼, 연결의 사라짐이었습니다.
The bitter taste of regret mingled with the lingering shadows, as I grappled with the irreversible consequence of a darkness that not only veiled the world but veiled the very soul of my existence.
세상을 가릴 뿐만 아니라 존재의 영혼마저 가린 어둠의 돌이킬 수 없는 결과와 씨름하면서 나는 여운에 뒤섞인 쓰디쓴 후회로 가득찹니다.
In the shadow of darkness, where the Pharaoh's decree echoed with hostility, a different narrative unfolded in the land of Goshen, where the Israelites dwelled. Amid the pervasive gloom, there persisted a glimmer of hope – a divine light that illuminated the hearts of God's people. The proclamation of severed relationships and the command to never see my face again emanated from the enemy's desire to plunge all into the abyss of isolation.
파라오의 칙령이 적개심으로 울려 퍼지는 어둠의 그늘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고센 땅에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만연한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 즉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비추는 신성한 빛이 지속되었습니다. 관계 단절의 선포와 다시는 얼굴을 보지 말라는 명령은 모두를 고립으로 몰아넣으려는 원수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The divine mandate beckoned the people to be bearers of light, not mere recipients of it. Worship, in this context, evolved into a sacred duty of focusing on loving God and neighbors. It demanded an active role in bringing illumination to the face of darkness, to be the embodiment of the true light that could mend the severed relationships.
하나님의 명령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빛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빛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배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신성한 의무로 나아갑니다. 예배는 어둠에 맞서 빛을 비추는 적극적인 역할, 즉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참된 빛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The call to go and leave your flocks and herds behind, symbolized a cunning ploy – a demand for sacrifice without shedding blood or dedication. Yet, the true worshiper understood that bringing light required a price.
양과 소 떼를 남겨두고 떠나라는 명령은 교활한 책략이며 피흘림과 헌신이 없는 제사를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참 예배자는 빛을 가져옴에는 대가가 있음을 압니다.
The mission at hand was to dismantle the power of darkness, to establish a worship that transcended the limitations of an era dominated by faceless interactions. It called for a restoration of face-to-face relationships, the kind that pierces through the darkness and reaches the depths of the heart. For it is said, "He who loves his brother lives in the light, and he who hates his brother is in darkness."
당면한 사명은 어둠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비대면이 지배하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예배를 세우는 것입니다. 어둠을 뚫고 마음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얼굴을 서로 맞대는 관계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거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In this epoch that seeks to sever the ties of genuine connection, the call to bring light necessitates a steadfast commitment to defy the enemy's plan. Face-to-face relationships become the battlefield where darkness is defeated, and the light of genuine worship and fellowship triumphs.
진정한 관계를 끊으려는 이 시대에 빛을 전하라는 부르심은 적의 계획에 맞서기 위한 헌신이 요구됩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댐은 어둠을 물리치고 진정한 예배와 교제의 빛이 승리하는 전장이 됩니다.
This article was written based on Pastor Daewi Kang's Mail Torah(매일토라) and the inspiration gained from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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