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동거(feat. 하마스 이스라엘 침공)

돌베개 2023. 10. 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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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7일 현지시간 새벽 칠천여발의 미사일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날라갔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오래된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 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중동은 지금보다 넓었고 지리적 특성에 따라 생겨난 국경선으로 공간은 느슨하게 나눠진 상태였고 지리와 부족, 종교가 통치하고 있었다.

 

  13세기 부터 중동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영국 측의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측의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가 비밀리에 맺은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 1916년 영국은 이라크와 요르단을,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러시아에게는 터키 동부를, 팔레스타인은 공동 관리하기로 맺은 비밀 협정)에서 그 선의 북쪽은 프랑스 통치하에, 남쪽은 영국의 지배 밑에 두기로 했다.

 

  유럽인들이 그어둔 인위적인 울타리 가운데 함께 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서로 다른 부족들과 종교들은 분쟁과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어디든 신앙과 종파, 종족이 다양한 이들을 따로 분리하여 한 정부가 통치하는 공간으로 밀어 넣는 일에는 타협과 전쟁이 필요했다.

YTN 이스라엘-가자지구

  오스만 제국은 요르단 강 서안부터 지중해 연안을 시리아 땅의 일부로 보았고 필리스티나(Filistina)로 불렀다. 1차 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 통치하에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편, 유대인들은 근 천 년동안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지역에 살았지만 잔인한 역사는 그들을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약속의 땅>이며 무엇보다 예루살렘은 성역 그 자체였다. 영국의 통치하에 소수종교였던 유대교도들에 가세하는 유대인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반에 유대인 등에 대한 조직적 약탈과 학살로 촉발된 유대인의 이주가 점점 늘어나면서 더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겪은 후 더 많이 몰려왔고 유대인대 비유대인의 긴장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1967년의 <6일 전쟁>동안 이스라엘은 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West Bank)과 가자 전역(Gaza Strip)에 대한 통제권을 얻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산-주간조선

예루살렘이 성역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유대인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모리아산(여호와이레 하나님이 이삭 대신 숫양을 제물로 준비하셨다)이 그 곳에 있으며 솔로몬 왕은 바로 그 곳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들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고 바로 그 곳에서 하늘로 승천했다 하여 예루살렘을 세 번째로 성스러운 장소로 여긴다. 그리고 이 성스러운 곳에 현재는 (가장 멀리 있는 모스크) 즉 알아끄사 모스크(AL AQSA MOSQUE)가 세워져 있다.

 

  예루살렘은 군사적으로는 그 지리적 중요성이 미미할 뿐 아니라 내세울 만한 산업도, 강이나 공항도 없다. 그러나 이 도시가 갖는 문화적, 종교적 의미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공간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 그 위치보다 훨씬 중요해지는 경우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땅(지리)에서 시작되었다!

팀 마샬이 "지리의 힘"에서 언급한 말이다. 위의 내용들도 그 책에서 참고하였다.

 

  산맥이나 하천망 같은 물리적 지형의 경계와 기후와 족속, 문화, 언어, 종교 등을 포괄하는 무형의 울타리를 넘어 지정학적인 공간은 또 다른 개념으로 유대인들에게 인쳐져 왔다. 탱크와 헬기가 집결하여 지상전이 임박해보이는 가자지구 그 곳! 가슴 아프게 상기시켜 주는 말씀이 있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유산으로 물려줄 손바닥만한 땅도 없었고 그저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일뿐이었다. 자식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 후손들에게 이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히타이트 족속에게 사라를 매장할 땅을 사겠다고 제안하고 역사상 최초의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졌다.

 

  "막벨라"는 "두 겹의 땅(동굴)"이라는 뜻으로 후에 아브라함 가족의 공용 매장지가 되었고 사라의 매장지 구입은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소유라는 것을 미리 인친 행위였다. 유대인들이 점유하는 그 공간은 시대를 거슬러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약속이 만들어내는 지속적인 영향력 사이에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 

 

  편견과 증오로 인한 고난을 겪고 있는 이곳은 무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왜곡된 가치관으로 선동되어 있지만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삶은 약속의 땅이라는 공간적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땅에서 길손과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찾고 있는 고향이 따로 있습니다.
만일 떠나온 곳을 잊지 않고 늘 마음에 품고 있다면,
언젠가는 돌아갈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더 좋은 곳을 동경합니다. 
그 곳은 하늘의 고향입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하나님은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저를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