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오전 예배를 드리고 말로만 듣던 마르쉐 농부시장을 언니와 함께 다녀왔다. 인사동의 KOTE도 처음이었지만 그 곳에서 그 토종의 채소로 만든 쳐트니, 페스토, 과일청, 커리, 샐러드들 그리고 토종 곡물로 만든, 빵, 젤라또, 수제치즈, 미소된장, 생강청, 오미자발사믹 오일 모두 생소했다. 그리고 토종 작물과 채소들까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아이폰 13 미니의 작은 화면에 담았다.
생소라기 보다는 신선하달까, 잘 알려진 조리법에 제철의 그리고 우리 땅에서 자란 과일과 채소, 곡물을 이용해 미각을 유혹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작은 병들, 한 덩어리의 빵 그리고 소복히 담긴 한 접시 때문이었다.
졸업 후, 잠재된 실험 정신을 자극하는 (대학원에서 실험을 많이 해서 그런가...) 여러 음식들을 시도해 보았다. 인도식 쳐트니, 페스토류, 비가열식 잼류, 이국적인 풍미의 커리, 녹색야채부터 익힘류의 샐러드들, 아프간과 중동 지방에서 유래된 가지요리 및 소스등을 만들었다. 이제는 성숙해진 요리의 맛을 누리며 루틴한 식단과 미각에 익숙해진 애정하는 요리들도 생겼다. 선호하는 방식의 조리법, 제일 좋아하는 레시피, 또는 살짝 망설여지는 부담스러운 요리까지 이것저것 해 보았으나 내 조리법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본기를 소홀히 여기면 맛도 맛이지만, 국적 불명의 뿌리 없는 요리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철 식재료가 눈앞에 펼져지며 자신만의 영감에 힘입어 양질의 재료가 풍요로이 조리된 음식들을 보니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불끈 생겼다. 부지런히 시식하고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 본다고 정신 없는 나와 달리 언니는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재배하고, 그것으로 어떻게 만드는지를 물어보면서 페스토가 담긴 작은 한병에도 많은 지식과 경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옆에서 듣고 배웠다.
장바구니에 카리테 미소된장, 종합재미농장에서 마지막 남은 게걸무, 흰고구마를 담고, 창무농원에서 자색땅콩을 담았다. 토종땅콩을 한주먹 쥐고 와서 맛있다 감탄하며 돌아나오는데 떨이로 판다는 쪽파가 보였다. 꼭 파김치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주저하다가 결국 품에 안고, 그 기세에 더해 꽃달린 고춧잎 다 털어담고, 얼마남지 않은 예쁜 빨간 토종고추도 다 주워(?) 담았다. 채소시장 마감 막바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추워서 종종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지만 마음은 풍성하고 따뜻했다.
우리나라 토종무인 게걸무는 줄기가 위로 뻗지 않고 옆으로 퍼진다. 일반 무보다 수분함량이 적어 조직이 치밀하며, 생으로 먹어보니 매운맛도 강해서 혀가 알싸한 것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경기도 여주와 이천등지에서 나오는 무로 게걸스럽게 먹을만큼 맛있다고 하여 게걸무라고 불린단다.
게걸무 된장국
멸치와 다시마 우린 물에 게걸무와 그 이파리, 보리새우, 말린 버터넛 스쿼시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마늘, 된장 세스푼을 넣고 맛을 보는데 와~ 진짜 시원한 감칠맛이 입에 돌면서 늘 해먹는 두부 된장국과는 다른 맛이었다. 마침 귀한 손님이 오셔서 대접했는데 맛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게걸무의 시원함이, 보리새우의 구수함이, 버터넛 스쿼시의 달큰함이 감도는 세가지 식재료로 조미료 없이도 감칠맛을 내니 이것이 제철 식재료의 힘인가보다.
알싸하고 매운 향이 톡쏘는 게걸무가 열이 가해짐으로 감자의 식감처럼 순해지며 자신의 향을 국물에 남기고 고유한 특성은 사라진다. 재료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좋은 결과물로 변화시키는 경험을 통해 내 인생이 이와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리의 본질
진정한 음식을 신경 써서 준비하는 풍요로운 감각을 가꿀수 있는 가정식은 일상적으로 늘 먹는 조리법과 특별한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재료 사이에서 신선함을 식탁으로 들여온다. 요리 작업이 성숙해지면서 조리실력도 성장했고, 손수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하여 섬기는 마음도 조금씩 자라났다.
밤새 물고기 한마리도 잡지 못하고 돌아오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좋은 아침이구나! 아침거리로 뭘 좀 잡았느냐?" 물으셨고, 그들은 "못 잡았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고 어떻게 되는지 보아라" 하셨다. 순식간에 수많은 고기가 그물에 걸려 들었는데 힘이 달려서 그물을 끌어 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예수님은 그 잡은 물고기로 친히 지피신
숯불 위에 물고기와 빵을 구워서 기진맥진한 그들에게 아침으로 주셨다.
식욕을 돋우는 별미가 아닌 질적으로 양적으로 채워지는 제대로 된 식사를 예수님은 준비해 주셨다. 정크푸드(junk food)가 아닌 스퀘어 밀(square meal)이다. 가공식품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양질의 재료(자연농법재배, 토종작물, 풍미를 강화하는 향신료, 발효 음식등)가 주변에 차고 넘치는 요즘이다. 분주한 일상 속에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게걸스러운 식탐에 사로잡혀 자신의 배와 미각을 풍요롭게 만드는 식탐기행은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
좋은 음식을 매일 저녁 식탁에 차릴 수 있도록 신경쓰기 이전에 주변의 배고픈 사람이 없는지 살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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